피를 부른 데탕트, 이스라엘-사우디 간 무슨 일이?-송승종 한국국방외교협회 외교안보전략실장 주간조선, 202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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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0일(현지시각) 사우디 왕국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MBS) 왕세자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과의 국교 정상화에 대해 “매일매일 더 가까워지고 있다. 처음으로 진지한 협상을 가졌다”고 밝혔다. MBS는 이스라엘과의 협정은 “냉전 이후 최대의 역사적 거래”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관리들도 “한 세대 만에 가장 중대한 중동평화협상(the most momentous Middle East peace deal in a generation)”이 9~12개월 이내에 타결될 수도 있다는 신중한 낙관론을 보였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도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미국 3국 간 협상이 타결되기 직전이라며, 이로써 3국 관계가 “비약적 도약”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미국·사우디·이스라엘 지도자들의 낙관적 발언들을 종합해 보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 불가’의 영역이었던 사우디·이스라엘 간의 국교 수립이 목전에 와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7월 ‘MBS는 조 바이든에게서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제목의 분석 기사에서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지난 10년 동안 비밀리에 관계를 가져왔는데, 바이든 대통령이 이제는 양국의 관계를 공식화하기를 원한다고 진단했다.
최대의 역사적 거래 무산시킨 하마스
그런데 1973년 발발한 ‘욤키푸르전쟁’(일명 ‘10월전쟁’) 50주년 기념일 다음날,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육상·해상·공중에서 다영역·입체 기습공격을 가하여 이스라엘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렸다. 극단파 하마스의 최종 목표는 온건파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와 달리 이스라엘의 영토에 새로운 이슬람 국가를 세우는 것이다. 사실 하마스의 최대 노림수는 사우디·이스라엘 수교 협상을 파투내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하마스는 자칭 ‘독립적’ 집단이지만, 실제로는 이란의 그림자 군대다. 이란은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수교하면 이스라엘과 수교한 아브라함 회원국(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수단, 모로코 등)들을 넘어 다른 중동국가들도 이스라엘을 국가로 승인하고, 이로써 중동지역에 ‘반이란 연합전선’이 구축되는 상황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간주한다. 이번의 하마스 기습은 이러한 평화지향적 추세를 일거에 반전시키기 위한 이란의 전략적 선제공격으로 봐야 한다.
하마스의 기습공격에 앞서, 사우디·이스라엘 수교협상의 타결에 낙관론이 제기되었던 이유는 3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먼저 MBS는 이스라엘과 국교 수립의 대가로 미국에 요구한 첨단무기(사드 등) 구매,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방식의 방위협정, 자체의 민간 핵 프로그램 등 안보·경제 면에서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연말까지 수교협상을 매듭지으려 중재 노력에 속도를 높이자, 이스라엘과의 ‘정략결혼’ 대가로 미국에 거액의 ‘지참금’을 요구한 형국이다. 또한 2018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살해를 ‘지시’했다고 결론을 내린 미 CIA의 판단으로 크게 실추된 이미지도 회복할 수 있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슬람의 최대 성지인 메카·메디나 수호국이라는 특별한 지위를 가진 사우디와의 관계 강화에 분명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사우디와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이스라엘은 중동지역 내 미수교 이슬람 국가들, 그리고 인도네시아·파키스탄 같은 거대 회교국가들과 관계 정상화를 이룰 수 있는 명분·정당성이 확보될 수 있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이래 고통스럽게 경험하였던 국제적 고립이 끝나기를 갈망해왔다.
바이든 대통령이 팔을 걷어붙인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2020년 전임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만 해도 엄청난 거래였던 ‘아브라함 협정’을 성사시켜 10여년간 소강상태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대화 창구를 되살렸다. 또한 중국은 올 3월 사우디·이란 관계 정상화를 성사시켰다. 중국 외교부는 양국 정상화가 “시진핑 국가주석의 제안으로 이뤄졌다”고 자랑했다. 외교분야 고수인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전임 트럼프 대통령 및 경쟁국 지도자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을 보여줘야만 했다. 2024년 대선을 앞두고 위대한 외교분야 성과가 필요하기도 했다.
바이든·MBS·네타냐후 의 이해관계
상기 맥락에서 보면, 미국·사우디·이스라엘 3국, 특히 바이든·MBS·네타냐후 3인의 이해관계가 절묘히 맞아떨어지는 모양새다. 하지만 3명의 협상 파트너들의 컨디션은 저마다 별로 좋지 못한 상태다. 무엇보다 사우디는 미국과 민주주의·인권·성평등 같은 가치관을 전혀 공유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해관계가 다르면 미국에 ‘애 먹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일례로 MBS는 유가 안정이 절실한 바이든의 석유 증산 요구를 거듭 무시해왔다. 지난 4월에도 사우디 중심의 산유국들이 1일 116만배럴의 감산을 결정했고 그 여파로 다시금 ‘배럴당 유가 100달러’ 시대가 열릴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이는 인플레이션과 전쟁 중인 미국에는 ‘나쁜 소식’이다. 반대로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에는 ‘기쁜 소식’이다.
네타냐후의 사정도 별로 좋지 않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가 취임한 지 9개월이 되어서야, 그것도 워싱턴DC가 아닌 뉴욕에서 첫 회담을 가졌다. 역대 최악의 극우정권으로 평가되는 네타냐후 연립정부는 사법부 무력화, 팔레스타인 지구 내에 정착촌 건설 강행 등으로 국내외의 비난을 받아왔다. 특히 미 의회 일각에서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극단적이고 근본주의적인” 네타냐후 정부가 이스라엘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으로 우려한다. 요컨대 ‘매우 좋은 거래’를 성사시켜야 할 파트너들이 ‘매우 나쁜 상태’에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MBS가 ‘정략결혼’ 대가로 요구한 것들
사우디가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 조건으로 미국에 들이내민 ‘지참금’ 목록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F-35 스텔스 전투기 같은 미국산 첨단무기의 판매 허용이다. 주요 무기 수출에는 종종 미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일례로 사우디는 미국산 사드(THAAD)를 이란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주요 방어수단으로 삼으려 한다.
둘째, NATO 방식의 방위협정 체결이다. MBS는 작년 7월 바이든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NATO 스타일의 철통같은(iron-clad) 안전보장’을 요구했다. 그러나 ‘유사시 집단방위’가 조약 5조에 명시된 법적 구속력을 갖춘 NATO 모델은 사우디에 적용되기 어렵다. 가장 큰 이유는 미 상원의 3분의2 찬성을 받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미국이 한국·일본과 맺은 것과 비슷한 안보협정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지지만, ‘조약’의 형태가 된다면 역시 의회 관문을 넘어서기 곤란하다.
차차선 대안이 바레인 모델이다. 미국은 제5함대가 주둔하고 있는 바레인과 지난 9월 ‘포괄적통합안보·번영협정(C-SIPA)’을 체결했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동 협정의 골자는 ‘권위주의’ 정권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경우, 미국이 바레인과 ‘현행 침략에 대응(confront the ongoing aggression)’하기 위한 최선의 방안을 협의한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 협정이 미국과의 보다 강력한 안보협정을 희망하는 걸프지역 내 다른 아랍국가들에 적용될 수 있는 본보기(template)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셋째, 민간 핵프로그램 제공이다. 미 국무부에 의하면, 현재 미국과 ‘원자력에너지법’(AEA·1954년)에 따라 원자력협력협정을 체결한 국가는 49개국(대만 포함, IAEA 제외)에 이른다. AEA 제123조는 “20% 농축이나 재처리 시 새로운 협정을 통한 미국의 사전 승인”을 거치도록 명시했다. 예외가 허용된 국가는 인도(NPT 미가입국 명분으로 농축·재처리 허용), 일본(농축·재처리 허용) 등에 불과하다.
MBS는 최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만일 이란이 핵무기를 갖는다면, 우리도 가져야 한다. 안보상 이유와 중동에서의 세력균형을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는 5년 전에도 똑같이 말했다. 비록 이란 핵개발을 전제로 한 ‘조건부’ 발언이지만, 핵무기 보유 의지를 명백하게 밝힌 이 발언은 ‘민간 핵프로그램’ 문제와 충돌한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우디가 자국 영토에 아람코처럼 미국인이 운영하는 우라늄 농축시설이 포함된 민간 핵에너지 프로그램을 제안했다고 전했다. 올 초 사우디는 “상당량의 우라늄이 발견되었다”며, 국제적 투명성 기준에 맞춰 “핵연료주기 전체(entire nuclear fuel cycle)를 포괄하는 원자력 산업의 개발에 나설 것”이라고 선언했다. 핵연료주기란 우라늄 원석 채취에서부터 사용후핵연료의 처리까지 모든 과정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평화적 목적의 민간 핵프로그램이 군사적 목적의 핵무기 생산에 전용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이 비확산 노력의 핵심이다.
미국의 중재가 사우디·이스라엘 국교 정상화 협상을 주도해왔지만, 한때 ‘상상 불가’의 영역으로 간주되었던 대변화를 일으킨 장본인은 MBS다. 최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PS)’는 ‘사우디의 신민족주의’ 제하의 기사에서 이슬람 시아파의 종주국에서 벌어지는 민족주의적 대변환(nationalist transformation)의 실상을 분석했다. 종교적 색채가 압도적인 사우디 같은 나라에서 민족주의가 국가적 대변신을 일으킨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PS는 사우디 국경일인 지난 9월 23일(1932년 사우디 왕국의 통일을 기념하는 날) 사우디 전역에서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젊은이들이 몰려나와 국기를 흔들고 춤을 추며, 공중에서 축하 비행하는 군용기에 환호하는 모습을 전했다.
사우디에서 급증하는 애국주의 움직임의 중심에 정치·경제 개혁을 주도하는 MBS가 있다. 그는 전통적 정치지도자보다는 시장지배를 목표로 삼은 기업의 CEO에 가깝다. 주요 신흥국 그룹인 브릭스(BRICS)에 가입하고, 중국 주선으로 이란과 데탕트에 합의하고, 미국 중재로 이스라엘과 수교협상을 진행하며, 2015년부터 개입한 예멘 내전의 종식을 위해 노력한다. MBS 개혁의 핵심은 사우디를 석유 수입에 의존하는 지대추구 국가(a rentier state)가 아니라, 탄화수소와 관계없는 수입을 창출하는 다각화 경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탄소중립 도시 ‘네옴(Neom)’ 건설 등 ‘기가 프로젝트’로 불리는 여러 초대형 사업들을 벌여왔다. 그는 사우디의 미래가 종교가 아닌 민족주의에 의존해야 한다고 믿는다.
MBS가 이스라엘과의 수교에 매달리는 이유
MBS에게 국내적 개혁과 외교적 정책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는 사우디의 지정학적 이점을 극대화하여 동서양을 연결하는 무역·운송·물류·통신의 허브로 부상시키려는 원대한 비전을 품고 있다. 이러한 목표가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 협상을 견인하는 원동력이다. 적어도 국가안보와 전략동맹에 있어서 MBS는 확고한 친미주의자다.
사우디·이스라엘 간 관계 정상화를 위한 3국의 조율된 노력에서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다음 3가지다. 첫째, 공동의 위협인식이 정치적 견해차는 물론 종교적 이질성도 뛰어넘는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다. MBS가 이스라엘과의 수교 협상(궁극적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에 적극 나선 결정적 배경은 이란에 대한 공동의 두려움이다. 한편 7년 동안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갈등을 벌였던 중동의 강대국인 사우디와 이란이 데탕트에 합의한 것은 그동안의 대립·충돌의 결과로 모두가 ‘패자’라는 점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양국의 진정한 속내는 미국의 역내 ‘발자국(footprint)’ 축소로 발생한 공백을 중국이 메워주기를 바라는 것일지 모른다. 사우디·이란 데탕트는 위험부담 경감·최소화를 위한 헤징 노력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즉 실용적 필요가 종파적 이견을 넘어섰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사우디·이란 데탕트 시도와 사우디·이스라엘 수교 협상은 최근 본격화되기 시작한 한·미·일 3국 협력에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공한다. 한·일이 생사를 좌우하는 북핵이라는 실존적 위협에 직면한 마당에, 여전히 과거사 문제로 왈가왈부하며 상대방에게 손가락질하는 것은 서로가 ‘패자’가 되는 지름길이다. 요컨대 공동의 적에 대한 위협의식 공유는 종교적·이념적·역사적 이견을 뛰어넘는 강력한 추동력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지금처럼 북한이 전술핵의 선제 사용을 협박하며 위협 수위를 높여가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향후 한·미·일 협력이 준(準)동맹관계로 격상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아시아판 NATO’의 등장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둘째, 사우디가 요구한 민간 핵프로그램이 어떤 형태로 귀결될 것인지가 관심사다. 역내 유일의 핵보유국으로서 다른 국가의 핵클럽 가입을 원치 않았던 이스라엘은 사우디가 중국·러시아 도움을 받아 핵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미국이 사우디에 핵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방안을 선호한다. 이와 관련, 지난 9월 21일 월스트리트저널은 네타냐후 총리가 자국 핵전문가들을 불러 사우디에 우라늄 농축권한이 부여되는 타협점에 도달하도록 미국과 협조할 것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만일 어떤 형태로든 제123조가 변형·완화되어 20% 이상의 우라늄 농축이 사우디 영토에서 허용된다면, 우리가 한·미 원자력협정을 미·일 수준으로 개정되도록 요구하는 명분으로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이 문제는 북한이 핵추진잠수함 개발을 공언한 마당에, 우리가 핵잠수함(핵무장이 아닌 핵추진)을 확보하는 데에도 중대한 관건이 될 수 있다. 이유는 현행 협정에서는 고농축 우라늄(HEU)은 고사하고 20% 이하의 저농축 우라늄(LEU)을 사용하는 핵잠수함 도입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역사적 거래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들
셋째, 미국이 소다자주의(minilate-ral)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는 대목도 주목된다. 사우디·이스라엘 관계 정상화를 위한 3국(미국 포함)의 노력은 오커스(AUKUS), 쿼드(Quad), I2U2(인도·이스라엘·UAE·미국), 한·미·일 등과 함께 미국 주도의 소다자주의 형태로 나타난다. ‘포린폴리시(FP)’는 ‘기민하고 새로운 소다자주의’란 제목의 기고문에서 네트워크이기 때문이 지역적·지리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점, 전통적 양자동맹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 인도 같은 비동맹 성향의 국가들도 주권을 지키면서 미국과 협력(예: 쿼드 참여)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소다자주의의 장점으로 제시했다.
1993년 오슬로협정 체결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레바논 내전이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후 이·팔 평화 프로세스는 흐지부지되었다. 30년이 지나 다시금 기회가 찾아왔지만, 이번에는 이스라엘이 하마스에 치욕적 기습을 당한 사건이 돌발변수로 등장했다. 하마스·헤즈볼라 연계가 표면화되고, 이란혁명수비대(IRGC) 장교들이 하마스 공격을 지원한 것이 명확해지면 앞으로 분쟁이 이스라엘·이란 간의 무력 충돌로 비화될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사우디·이스라엘 평화협상이 적어도 당분간 소강상태에 접어들 공산이 크다. 그러나 미국·사우디·이스라엘 3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는 변함이 없다. 최근 사우디는 미국에 대한 선의의 제스처로 “원유 증산에 나설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미국도 하마스의 기습공격을 “테러집단에 의한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이라고 규정하고, 사우디·이스라엘 간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한 노력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요컨대 3국이 화해 무드의 지속에 공감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최대의 당면과제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예루살렘의 ‘해방’은 모든 무슬림이 간직하는 종교적 신념의 핵심이다. 메카·메디나에 이어 이슬람 제3의 성지인 ‘알아크사(Al-Aqsa)’ 모스크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우디에 있어 팔레스타인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명령이다. 하마스 테러 직전까지만 해도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양보 조치 △미국의 안전보장 및 민간 핵시설 지원 △사우디의 이스라엘 인정(국가로 승인) 등으로 이뤄진 패키지 딜이 9부 능선까지 오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팔레스타인 문제가 어정쩡한 상태에 머물렀다. 기본적으로 역사상 PA에 가장 적대적이고 호전적인 이스라엘 극우정부는 영토문제에 관한 한 어떤 양보도 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사우디·이스라엘의 고민은 과연 ‘팔레스타인의 누구와 거래할 것인가?’라는 문제이기도 하다. 18년째 장기집권 중인 88세의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수반(마흐무드 압바스)은 노쇠·부패·무능한 지도자로 낙인찍힌 데다, 사우디·이스라엘 수교협상에서 스스로의 역할을 포기한 듯한 소극적 행보로 일관하여 존재감을 잃었다. 하마스가 바로 그 허점을 포착했다. 무기력한 압바스의 승인 또는 묵인이 사우디·이스라엘 관계 정상화에 필요한 ‘합법적인 은폐’를 제공할 여지가 있다는 취약점을 하마드가 파고든 것이다. 2002년부터 사우디는 ‘사우디 평화구상(Saudi Peace Initiative·SPI)’에 따라, 골란고원·서안지구·가자지구로부터 이스라엘 완전 철수, 그 대가로 유엔 총회 결의안 194호에 따라 이·팔 분쟁 해결 및 아랍·이스라엘 관계 정상화를 요구해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미국 모두 SPI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반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해법으로 내놓은 것은 “어떻게 하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을 편안히 할 것인가(how to ease the lives of Palestine people)”였다. 골자는 △도로·통신 등 서안지구 인프라 업그레이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에서 일할 수 있도록 취업허가 제공 △사우디의 재정원조 보장(수억 달러) 등이다. 그런데 MBS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활여건 개선”을 강조하여 이스라엘 주장에 힘을 실어 주었다. 구체적으로 난민수용소와 하수도 인프라 개선, 무역·상업센터 설립 같은 프로젝트를 언급했다. 핵심은 MBS가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중요시하지만, 종전처럼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요구하지는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MBS는 이번 하마스 공격으로 전쟁이 발발하자 “팔레스타인 편에 서서 분쟁 종식에 노력할 것”임을 밝혔다. 여기서 방점은 “팔레스타인 편에 서서”가 아니라 “분쟁 종식 노력”으로 봐야 한다. 이것은 사우디·이스라엘 국교 수립의 최소요건이다. 향후 사우디는 분쟁 격화를 막는 ‘방화벽’은 아닐지라도 ‘과속방지턱’ 이상의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시대를 뛰어넘는 혜안을 갖춘 MBS는 이스라엘 수교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의 잠재력을 간파하고 있다. 자신이 깊숙이 개입한 이 모든 과정이 하마스에 기습적 테러의 명분을 준 것도 잘 알고 있다. 하마스의 테러공격은 그간 이어진 3국 노력의 견고함을 테스트하는 혹독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사건의 여파가 가라앉을 무렵이 되어야 모든 것이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날 전망이다.
주간조선, 202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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