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언론동향

건국훈장 5명 배출 최대 독립운동가 지청천 광복군 총사령관 가문 후손들 병역명문가에 선정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admin
댓글 0건 조회 1,357회 작성일 24-05-08 09:26

본문

건국훈장 5명 배출 최대 독립운동가 지청천 광복군 총사령관 가문 후손들 병역명문가에 선정


de213491083dff2c670f61f1731fef3c_1715127928_9883.png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낸 독립운동가 지청천 장군. 문화일보 자료사진©제공: 문화일보

 

4대 병역명문가 스토리 가문에 선정30일 대통령 표창 시상식

광복군 출신 1대 지달수(독립장) 3115개월 근무

지청천 장군 대통령장, 지 장군 부인 윤용자 여사 애족장

지달수 선생 고모 지복영 선생·고모부 심광식 선갱 각국 애국장

 

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낸 지청천 장군의 아들부터 손자, 증손자 등 총 5명이 병역의무를 이행해 ‘2024 병역명문가 스토리 가문에 선정됐다.

7일 병무청에 따르면 이들은 오는 30일 병역명문가 시상식에서 스토리 가문으로서 대통령 표창을 받을 예정이다.

특히 지청천 장군 가문은 지청천 장군이 대통령장, 지 장군 부인 윤용자 여사가 애족장, 지 장군 아들 지달수 선생은 독립장, 지달수 선생의 고모 지복영 여사와 모부 심광식 선생이 각각 애국장을 받는 등 무려 5명이 건국훈장을 받은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가문이다. 이번에 손자 증손자까지 병역명문가에 선정돼 독립운동 가문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병역명문가란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직계비속, 즉 조부와 부·백부·숙부, 그리고 본인·형제·사촌형제 등 3대 가족이 모두 현역 복무 등을 성실히 마친 가문에 주어지는 호칭이다.

광복군·독립군 등 국가보훈부가 인정한 독립유공자 또한 현역 복무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병무청은 공식적으론 3대까지만 병역명문가 신청을 받고 있다.

또한 지청천 장군의 손자 지상용씨는 공군 병장 만기 제대, 지상우씨와 지상철씨는 각각 하사로 전역했다. 증손자 지영환씨는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지달수 중령을 1대로 봤을 때 지 중령을 제외하고, 23, 31명 등 총 4명의 복무기간을 합치면 총 115개월이 된다.

이들은 지청천 장군부터 4대에 걸쳐 내려오는 병역 복무기를 적어내 이번에 스토리 가문으로 선정됐다.

병무청은 특별히 감동적인 병역 이행 사연이 있는 가문을 선정해 대통령·국무총리 표창을 수여하고 있다.

병무청의 병역명문가 선양사업은 병역을 명예롭게 이행한 사람이 존경받고 긍지를 갖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취지에서 2004년 시작돼 올해 21주년을 맞았다.

지청천 장군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만주로 망명, 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내는 등 무장 독립운동 펼쳤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됐다. 지 장군은 19458월 해방이후 건국 및 건군의 기초를 강화하기 위하여 ‘10만 국군 건설주창했다. 19474월 환국 후 9건군계획서를 작성, 한국 내에 일본 제국주의의 재침공을 감시하고 공산주의에 대항할 국군의 건설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으며. 난립된 청년 활동을 통일적 지도력으로 통합하여 29만여명의 군대를 건설함으로써 한반도의 전쟁을 막을 수 있다. 이를 위하여 대동청년단과 육해공군동지회가 기간이 될 것이다. 한국 문제는 미국의 지원을 받지만 한국인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지청천은 가까운 미래에 한반도에서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 진영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 진영 사이에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고 확신하였으며, 이를 위해 최대한 빨리 한국군을 건설하여 미래 미-소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청천 장군의 아들 지달수 중령은 광복군에서 아버지와 함께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대한민국임시정부특파 화북평수지구 공작단장(1936),한국광복진선청년전지공작대, 한국광복군제2지대제2구대장(1941)

한국광복군제2지대제2구대부구장(1942,서안) ,한국광복군 남경잠편지대 부지대장(1945)을 지냈다. 만주독립군과 한국광복군에서 독립운동을 하며 치열한 전투도 치르고 무장독립운동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청천 장군 부인 윤용자 여사는 1930년대 가족을 이끌면서 독립운동가들이 항일운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도왔다.19406월에는 정정화·김병인·이헌경 선생 등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 한국혁명여성동맹 창립에 참여하며 항일독립운동을 하는 한편 임정 요인들과 독립운동가 자녀들을 헌신적으로 보살폈다.

지달수 선생의 고모 지복영 선생은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서 연극을 통하여 부상병을 위한 모금활동과 중국 사람들에게 항일 정신을 일깨워 일본군과 싸우도록 도왔다. 한국광복군 창설 멤버로 기관지 광복을 펴내는 일에 관여했다. 임시정부 선전부 및 외무부에서 근무하고 해방 전 중국 중앙방송국에서 대적 한국어 방송을 담당했다.

지달수 선생 고모부 심광식 선생은 난징(南京)의 조선혁명당에 입당 항일운동을 했다.1943년 임정국무회의 비서처 서무담당, 선전부 총무과에서 근무했다. 19456월에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 부관처(副官處)의 서무과장으로 임명돼 광복군 참령(參領)으로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복무했다.

병무청의 병역명문가로 선정되면 증서와 패, 병역명문가증 뿐만 아니라 전국 1300여개 시설에서 이용료 할인 등 각종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정충신 기자 / 문화일보, 2024-05-0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