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 군면제 논란… 다시 묻는 땀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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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병역 특례 폐지 재점화
“왜 저 선수는 혼자 거수경례를 하고 있나요?”
지난달 24일 아시안게임 한국 축구 조별리그 경기를 보던 한 인도 기자가 물었다. 다른 선수들은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있었다. ‘저 선수’는 남자 축구 대표팀 조영욱(24·김천 상무). 그는 상무 소속 군인(상병)이기 때문에 군인 제식을 취한 것이다. 하지만 다음 경기부턴 그럴 필요 없다. 이번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그는 남은 복무 기간(10개월)을 채울 필요 없이 ‘조기 전역’을 할 수 있게 됐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결승에서 일본을 꺾고 금메달을 차지한 대표팀 조영욱(가운데)이 7일 중국 항저우 황룽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메달 수여식에서 거수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시안게임이 8일 막을 내리면서 대회 1위 입상자에게 주어지는 병역특례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불거지고 있다. 한 경기도 뛰지 않은 선수가 ‘무임 승차’로 병역 특례 혜택을 받고, 온라인 게임 e스포츠나 바둑까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게이머나 바둑기사들까지 군 복무 의무를 면제받는 상황이 벌어지자 “과연 이 제도(아시안게임 금메달 병역 혜택)는 뭘 위해 있는 건가”라는 의문이다. 원래 1973년 예술·체육계 종사자들에게 “한국을 국제 사회에 알리는 국위 선양” 동기 부여 차원에서 도입했는데, 제도를 만들 당시엔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16개(1974년)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최대 96개(2002년)에 달할 정도로 위상도 달라졌다.
굿바이 항저우, 2026년 나고야서 만나요 - 8일 중국 항저우 올림픽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폐회식에서 디지털로 구현한 성화 봉송자가 일본 일장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다음 아시안게임은 2026년 일본 아이치현과 나고야시에서 열린다. /뉴스1
◇ 병역 혜택 위한 수단으로
체육 요원 병역 혜택은 처음엔 범위가 올림픽 메달, 세계선수권은 물론 아시아선수권 3위 이내, 심지어 유니버시아드(세계대학생 대회) 3위 이내까지 해당됐다. 그래봤자 당시엔 많지 않았다. 그런데 스포츠 선수들 경쟁력이 상승하고 대상자가 급증하자 이를 제한했다.
1990년부터는 올림픽 3위 이내, 아시안게임 1위에게만 병역 혜택을 줬다. 이들은 4주 동안 기초 군사훈련을 받고, 본인 활동 분야에서 544시간 봉사하면 군 복무를 한 걸로 인정받는다. 그나마도 중간중간 2002년 월드컵 축구 4강, 2006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야구 4강 등을 달성한 선수들에게도 “병역 혜택을 주자”는 여론이 일부 일자 일시적으로 한시 규정을 만들어 이들에게도 특혜를 준 바 있다.
◇ 경기 뛰지 않고도 병역 면제
아시안게임은 종목에 따라 더 이상 금메달을 따기 어려운 국제 대회가 아닌 게 꽤 있다. 야구가 대표적이다. 한국을 제외한 참가국은 대부분 아마추어 선수들이 나오기 때문에 병역을 해결하지 못한 프로 선수들이 나서는 한국엔 아시안게임이 ‘합법적 병역 브로커’로 통하는 실정이다. 손쉽게 금메달을 따다 보니 적잖은 프로 선수들이 병역 면제를 노리고 참가한다.
7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인근 사오싱 야구·소프트볼 스포츠센터 제1구장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결승전. 투수 곽빈이 7회말 더그아웃에서 수건을 어깨에 두른 채 경기를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과거 부상을 숨기고 참가해 거의 경기를 뛰지 않고 병역 면제만 챙겼다는 의혹을 받는 선수가 있었고, 이번에도 투수 곽빈(24·두산)은 “등에 담이 왔다”면서 공 한 번 안 던지고 대표팀이 금메달을 따는 바람에 병역 특례 수혜자가 됐다.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야구 대표팀을 향해 ‘은메달을 기원한다’는 릴레이 게시물이 올라오는 것도 이런 연유다.
그동안 병역법은 축구와 야구 등 단체 구기 종목 등에서 특례를 받기 위해선 경기에 나서야 한다고 정했다. 그래서 2012 런던 올림픽 축구(동메달)에선 마지막 경기까지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던 김기희(34·울산현대)가 마지막 3·4위전에서 동메달이 거의 확정적인 상황이 되자 병역 특례를 위해 4분만 남기고 부랴부랴 교체로 들어가기도 했다. 논란이 되자 2020년부터는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만 해도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법이 바뀌었다. 대표팀 명단이 곧 병역특례 명단인 셈이다.
골프도 다르지 않다. 이번 아시안게임부터는 프로 선수들도 참여할 수 있게 규정이 바뀌었다. 시즌 중이라 여자 프로 선수들은 대부분 불참했다. 그러자 미프로골프(PGA) 투어에서 활약하는 임성재(25·세계랭킹 26위)와 김시우(28·40위)가 출전했다. 다른 나라는 거의 아마추어 선수들만 나왔다. 병역 혜택이 목표라는 게 분명했다. 프로인 둘이 나와 아마추어들을 상대로 별 어려움 없이 남자 단체전 금메달을 따냈다. 이들은 소기의 성과를 이뤘다. 임성재는 “PGA 투어에 더 집중하고, 롱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 종목 계속 늘어 면제 대상 확대
더 문제는 아시안게임 경기 종목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번에도 논란이 된 e스포츠 외에도 바둑, 브레이킹 댄스에 카드 게임(브리지), 체스, 상치(장기의 일종·시범 종목) 등까지 포함되면서 “이런 게 과연 스포츠가 맞느냐” “아시안 게임은 더 이상 체육 행사가 아니다”라는 논란도 제기되는 실정이다.
지난달 29일 중국 항저우 e스포츠 센터에서 열린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e스포츠 리그 오브 레전드(LoL) 결승에서 한국 선수들이 대만을 상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대회 e스포츠 리그오브레전드(LoL)에서 금메달을 따 병역 혜택을 받게 된 ‘쵸비’ 정지훈(22)은 “시대를 잘 타고 태어나서 감사하다”고 했다. 정용철 서강대 스포츠심리학 교수는 “과거 (선수들) 기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고안한 극단적 수단”이라며 “결국 형평성의 문제다. 국위 선양만을 따진다면 방탄소년단(BTS)은 왜 군대를 간 것일까. 유효 기간이 다 된 법을 손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영빈 기자, 항저우=박강현 기자 / 조선닷컴, 202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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